이 책은 미국 뉴욕 빙햄튼 주립대학 시드니 하케이브(1916-2008) 교수의 생애 마지막 저서(Count Witte and the Twilight of Imperial Russia. M. E. Sharpe, 2004)를 옮긴 것이다. 제정 러시아사, 소련사 및 러시아 혁명에 관한 굵직한 저작을 남긴 저자는, 1990년 위떼 회고록을 편찬한 이래 위떼 연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 분야를 천착해 온 연구자일지라도, 복잡 다양한 평가를 받는 한 인물의 내면과 콤플렉스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인식을 깨뜨리기라도 하듯, 이 책은 제정 러시아의 황혼기를 폭넓게 다루면서도 역사적인 인물의 내면을 촘촘하게 그려내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룬 인물은, 근대화, 산업화, 철도 부설, 자본주의 발전, 혁명과 같은 육중한 역사적 테마로 규정되는 러시아 전제정 말기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던 위인이다. 그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와 새 시대의 물꼬를 튼 이는 바로 세르게이 율리예비치 위떼(Sergei Iulevich Witte)이다.
위떼는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도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인물로 추앙받는 위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도대체 한 사람에게서 이처럼 눈부신 이력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위떼는 분명 거인이었다. 재무상으로서의 위떼는 러시아 산업화와 근대화의 아버지이며, 9,300여 ㎞에 달하는 시베리아 철도를 부설하며 러시아의 동아시아팽창을 이끌었던 총수격의 인물이었다. 러시아 최초의 수상으로서의 위떼는, 자신이 사후 그렇게 기억되기를 원했듯이, 전제군주정에서 입헌 군주정으로 전환시킨 1905년 ‘10월 선언’의 주역이었다. 혹자는 위떼에게서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를 떠올리는가 하면, 당시의 정적들은 위떼를 러시아의 악령, 유대계 프리메이슨주의자들과의 공범자라고 혹평했다.
양극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그 역사적 위치가 폄하되지는 않는다. 다양한 평가를 받은 위떼였지만, 그가 피터대제 이래 러시아의 유일한 정치가요, 전제정 말기에 가장 유능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각료이자 위대한 정치 개혁가였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저자는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 듯이 보이는 위떼의 다양한 내면을 분석하면서, 위떼 회고록과는 상반된 다른 증언들과의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역사가로서의 객관성을 시종 유지하고 있다. 위떼 연구의 완결판이라 할 이 책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어떤 이들에게 이 책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고위 관리의 진정한 모델로 혹은 진정한 리더십의 자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게 만들 것이다. 연구자들에게 이 책은 러시아 제국의 황혼기의 빈 공백을 메워 주는 방대한 1차 자료집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줄 것이다. 가령 포츠머스강화에서의 위떼의 행적은 마치 역사적 장면을 눈앞에 펼쳐 보이듯 치밀하고도 생생하게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